문화예술 리뷰 / 미술

탁월한 상상력이 이뤄낸 훌륭한 작품전




윤진섭 / 미술평론가

작가의 예술세계 전모를 살펴볼 수 있는 강익중 초대전

AFKN 방송에 '한국의 창 Window on Korea'이란 프로그램이 있다. 주한미군이나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문화에 대해 소개하는 짤막한 내용이다.

이 프로그램이 갖는 중요성은 외국인, 그것도 특히 서양인의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을 거꾸로 한국인의 입장에서 파악해 볼 수 있다는 데 있다. 우리의 관습과 사고로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 서양인의 눈에는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문화의 상대성과 특수성을 고려할 때 이질문화에 대해 호기심을 보이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며, 그러한 접촉을 통하여 인간은 타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여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최근 조선일보 미술관과 학고재, 아트스페이스 서울 등 세 군데의 화랑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는 강익중 초대전은 일단 규모 면에서 시선을 끄는 전시회였다. 가로, 세로가 각 3인치인 정사각형의 캔버스 5만여 점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회는 그 동안 외신으로만 전해졌던 강익중 예술세계의 전모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백남준과 함께 가졌던 휘트니미술관 초대전으로 국내의 미술 애호가들에게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강익중은 뉴욕에 거주하는 재미 미술인이다. 홍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1984년에 뉴욕으로 건너갔던 그는 프렛 미술대학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펼쳐 나갔다. 이번에 출품된 소형 캔버스 작품은 미국에 거주하면서 보고 느낀 단상을 기록한 그 자신의 '창(窓)'이다. 그것은 또한 작가의 내밀한 의식이 담긴 일이기도 하다. 뉴욕에 거주하던 초창기에 강익중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는데, 집에서 직장을 지하철로 왕복하는 동안 차안에서 작은 크기의 작품들을 제작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지하철이 그의 이동하는 작업실이었던 셈이다. 이때의 모습이 다음의 글 속에 잘 나타나 있다.

'강익중이 뉴욕에 온 해는 1984년. 그는 한동안 12시간씩 일을 하며 고된 유학생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 짬짬이 그림을 그려야 했으니, 그가 조그만 캔버스를 만들어 주머니에 넣어 오가는 지하철에서 작품을 했다 해서 이를 그리 유별난 행동으로까지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림은 그에게 생존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런 과정에서 이제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다시피 한 '3인치x3인치' 그림이 탄생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지하철 안에서 짬을 내 그림을 그려야 할만큼 생활이 어렵지 않고 또 그렇게 그려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도 않는다. 전업작가로서 작업실에 앉아 자신의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처지다. 하지만 뉴욕에 왔던 초창기, 일터에서 그리고 지하철에서 '새로움의 충격'으로 다가왔던 그 무수한 인상과 이미지들에 대해서는 그는 지금도 한 사람의 사냥꾼으로 다가선다. 작업환경은 바뀌었지만 작업 내용이 변하지 않은 까닭이다' (이주헌, 일상의 편린들, 그리고 그것들의 산, 강익중 개인전 카탈로그).

화가 자신의 바깥을 살피는 창으로서의 캔버스

강익중의 이번 개인전 카탈로그에는 흥미 있는 한 장의 사진이 실려 있다. 한 일본인 사무라이가 나막신의 볼록 튀어나온 바닥 면을 맞붙여 경치를 살피는 장면인데, 망원경의 역할을 하는 그것의 모양이 격자 형태를 띠고 있다. 이 사진에서 보이는 나막신처럼 강익중의 격자 캔버스들은 화가 자신이 바깥을 살피는 창의 구실을 하고 있다. 거기에는 작가 자신이 일상 속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이미지와 사물, 그리고 사건들이 다양한 형식을 통해 기록되어 있다. 거리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지하철에서, 시장이나 음식점에서 보고들은 자잘한 일상의 파편들이 작가 특유의 위트와 풍자로 이미지화되어 캔버스에 그려진다. 사물과 사건을 작품화하는데 있어서 그는 꼭 드로잉만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영문이나 한글, 한자 등 다양한 언어가 동원되는가 하면, 자잘한 일상용품과 심지어는 가구의 한 부분도 오브제로 부착된다. 「happy frog」,「happy bread」,「happy happy sock」과 같은 'happy' 시리즈를 비롯해서 '언젠가 나는 나를 떠날 것이다'와 같은 문장들이 등장되기도 한다. 그가 그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상징과 기호, 이미지들은 자신이 직접 선택한 허다한 오브제와 함께 강익중의 의식의 흐름을 엿보게 해주는 단서들이다. 3인치 짜리 캔버스 하나하나는 마치 영화 속의 정지화면처럼 독립적이면서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잘 짜여진 드라마의 부분을 이룬다. 그것들은 다 인종들이 모여 숨쉬며 살아가는 거대도시 뉴욕이 뿜어내는 복합문화에 대한 훌륭한 주석이다. 흑백의 인종차별, 자선과 갈취, 굶주림과 극도의 풍요가 공존하는 미국 사회의 이면이 강익중 특유의 풍자에 의해 재단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에 대해 그가 바라보는 국외자적인 시선은 객관성을 띤다. 최근 강익중이 미국에서 급부상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그의 작품이 지닌 객관적 시각이 한 몫을 톡톡히 해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자화상을 객관적으로 그려낼 수 없는 사회가 한 이방인에 의해 발가벗겨졌을 때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바라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 「굶주린 예술가를 위한 식당 안내에 대한 조사」라는 제목의 강익중 작품은 현대미술의 메카로 알려져 있는 뉴욕의 어두운 단면을 을씨년스런 어조로 전해 준다. 그것은 지난날 그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훌륭한 '문화의 혼합가'의 탁월한 상상력에 기대 건다

작가 스스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그의 작품은 마치 비빔밥과 같다. 온갖 야채를 밥에 얹어 비벼 먹는 이 전통 한식은 강익중 작업의 기본 컨셉트와 신통할 만치 일치한다. 비빔밥에서 맨 밑에 놓이는 '밥'은 강익중 작업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한국적인 것의 총화'에 해당한다. 한국적인 사고방식, 한국의 역사, 한국의 풍물, 한국의 문화, 한국의 관습 등이 이루어내는 관념 덩어리가 곧 그의 작품을 증식시키는 바이러스의 원형이다. 따라서 밥 위에 얹히는 채소는 어디까지나 부재료일 뿐이며, 밥의 성격이 확실한 이상 밥을 비비는 방법은 별문제가 되지 못한다. 강익중이 자신의 작업 속에 끌어들이는 기법이나 형식들이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지적이 가능하다면, 그의 작품세계의 핵에 해당하는 정신성, 곧 '밥'이 차별성을 가져다주고 있다. 발견된 오브제의 사용이나 먹는 작품(초콜릿을 이용한 설치작품), 사운드의 도입, 퍼포먼스 등이 그의 작업을 특화시키는 요인이 아니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는 주체적인 시각에 달려 있는 것이다. 한 사회에 대한 냉철한 주석가로서의 화가의 입장이 잘 나타나 있는 강익중의 작업을 보면서 보편성을 생각한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이유에서였다. 그는 훌륭한 '문화의 혼합가' 곧 밥을 잘 비비는 사람임에 분명해 보였다.

약 5만여 점에 달하는 금번 출품작들은 작가의 노력과 땀이 응고된 결정이다.

그 많은 작품들의 하나하나에는 작가 자신의 추억과 이국문화에 대한 인상이 담겨 있다. 그의 설치 작업이 보여주는 파노라마는 현대미술의 다양한 형식들이 집결된 백화점과 같다. 이 탁월한 상상력의 소유자의 작업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어 나갈지 자못 기대가 된다.